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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대표님특별 훈시 교육 자료 공지
글쓴이 : 방주
• 조회 : 4,880  
110km/day, 1/20/month 매일의 나의 이동거리와 나의 첫 월급이었다. 인천에 소재한 한 고등학교로의 파견업무를 시작한 당시 나의 월급은 대기업 및 공기업으로 취직한 대부분의 대학 동기들의 월급에 1/20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For what?” 내가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친구, 부모님 할 것 없이 다들 내게 했던 질문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학교에 도착했을 때 학생들은 나를 이렇게 쳐다 보았다. ‘저 선생님은 얼마나 버틸까? 1개월? 2개월?’ ‘일류대인 연세대학교를 수석 졸업한 사람이 왜 이 촌구석에 와서 우리를 가르친다고 하지? 분명 자기 커리어에 도움되니까 왔겠지.’ 우리 단체에서 맡게된 학생들은 특별히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친구들이었다. 아버지가 셋이었던 친구,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였던 친구, 아버지의 담배냄새가 몸에 베어 항상 담배냄새가 났던 친구, 아버지가 미국으로 재혼을 가셔서 이단종교에 빠진 홀어머니와 살게 된 친구, 어머니가 저녁 11시까지 병천순대집에서 일하던 친구, 치열한 경쟁에 지쳐 자퇴, 자살까지 생각하다가 병원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던 친구까지… 학생들은 우리반을 ‘loser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였다.
학교 선생님들과의 관계 구축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선생님들께서는 교사 자격증이 없는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우려하셨다. 부모님과의 갈등 문제도 있었다. 변호사인 아버지는 내가 법조인이 아닌, 매일 인천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 교사(정규교사도 아닌)로서 일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못마땅해 하셔서 이직하라고 자주 화를 내셨다. 회사업무를 보고 인천에서 돌아오면 매일 자정 가까이 되서야 집에 들어갔기 때문에 어머니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걱정하시고 못마땅해 하셨다. 이처럼 학생들, 교사들, 심지어 부모님에게서 조차도 지지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다른 이들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하면 나의 결단이 무너질까봐 힘들 때는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에서 조용히 우는 때가 많았다그렇지만 교육에 대한 나의 열정은 그 어떠한 장애물도 막을 수 없었다. 사무실과 학교를 오고가는데는 왕복 4시간이 소요되었고 버스를 세번 갈아타야했지만 나는 학교가 문을 열지 않는 토요일에도 수위실에서 열쇠를 빌려 수업을 진행하였다. 학교가 소독하여 폐쇄하는 날이면 희망자에 한해 스타벅스에 데리고 가서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학교 시험이 있을 때 학교 정규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9시간 이상을 학생들과 함께 했으며 여름 방학 기간에도 우리 반만은 나와 수업을 진행하였다. 한번은 방학기간 중앙 냉방이 통제되어 수업을 하는데 옷이 땀에 흠뻑 젖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크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학생들과의 신뢰관계를 쌓는 일이었다.
나는 정해진 수업시간 외에 최대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힘썼다. 그래서 항상 수업 시작 한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하여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게임에 함께 참여하였다. 정장 차림으로 하이힐을 벗어던진채 학생들과 함께 한발뛰기(게임의 한 종류)를 하여 학교 선생님들이 놀라신 적이 몇 번 있기도 했다. 학생들이 원할 때면 저녁식사 시간(6~7)을 이용하여 상담을 하였다. 특히 많은 정서적인 보살핌이 필요했던 정신과 상담을 받는 학생 (박ㅎㅈ)과는 수업 후인 저녁 10시 이후에 시간을 내어 약 한 달 반 동안 매일 상담을 진행하였다. 또한 공부에 흥미를 붙여 저녁식사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하겠다는 학생들이 생기자 그 학생들에게 직접 도시락을 싸다 주었다. 학생들 개교기념일에는 KIPP스쿨의 field trip과 같이 학생들을 데리고 직접 나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데리고 가서 강의실을 방문하고 학교를 탐방하는 시간도 가져 일류 대학 진학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학생들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다.
4개월 정도가 지나자 학생들도 마음 문을 열고 나를 신뢰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학생들의 학업증진도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 이를 위해서 나는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교사가 되고, 우리 단체 봉사자들에게는 최고의 리더가 되고자 노력하였다. 먼저, 학생들에게 자신감,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해 우리 반만의 구호를 만들었고 매일 수업이 끝나면 구호를 외치며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학생들의 책임감을 증진하기 위해서 우리 반을 시작하기 전에 서약서와 학부모서약서를 받았다. 또한 공부계획노트 양식을 따로 만들어 매일 스스로 작성하도록 하여 검사하였고, 하루에 공부한 시간을 합산하도록 하여 점차적으로 공부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매주 토요일에는 일주일동안 작성한 공부계획노트를 가지고 학업 면담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매번 보는 모의고사나 내신 시험 성적표를 엑셀 파일로 만들어 학생들이 자신들의 성적변화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그 어떤 최고의 교육 컨설턴트 못지않게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관리하려고 노력하였다. 사실 내가 학생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데 가장 집중한 것은 학생들이 자신이 계획한 것을 이루는 능력을 계발함으로써 인생을 스스로 계획하고 살아낼 수 있는 법을 알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그들은 대물림 되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었다. 그리고 주1회씩 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자들의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나는 매월 봉사자들의 모임을 주도하여 피드백을 받았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등에 관한 정보를 ppt로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또한 봉사자들의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그들이 3회 이상 모의강의를 진행하도록 하였고 수업보고서 양식을 만들어 매주 이메일을 통해 그들의 수업 준비상황, 수업 내용 등을 보고 받고 그들의 수업 내용을 구성하였다.
정확히 295번째 학생들과의 수업 이후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 성과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내가 아꼈던 제자 중 한 명은 7개월만에 전교 116등에서 전교10등까지 성적이 올랐으며, 우리반의 약40%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다음 학기 다니엘반(성적 상위권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들어가는 반)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우리 반에 남아서 공부하겠다고 결정하였다!) 우리반 학생들은 난생 처음으로 공부를 통해 얻는 성취감을 맛보게 되었고 처음에 10분도 앉아있지 못했던 학생들이 2시간 정도 앉아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자살을 생각하던 학생은 원하던 대학교(국내20위권 안에 드는 서울 소재 사립 대학)에 진학하여 인천아시안게임 서포터즈로 활동할 만큼 사교적이 되었다.
성적이 올랐던 한 학생의 학부모는 학생들과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며 직접 식사비를 기부하셨고 다른 학교의 교사였던 한 학생의 어머니께서는 다른 학교에도 이러한 수업이 진행되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학생들과의 신뢰관계도 형성되었다. 학생들은 종종 나를 ‘엄마’라고 불렀으며 기간동안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는 50통이 넘는다. 내 생일날에는 학생들이 직접 동영상을 만들어 깜짝 파티를 해 주어 학생들과 함께 펑펑 울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 반에 속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며 나에게 ‘선생님, 내 친구가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해요.’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학교와의 신뢰관계도 쌓을 수 있었다. 종업식 날에는 전교생 앞에서 고등학교장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였고 우리 단체는 그로 인해 학교장 추천 감사장을 받게 되었다. 또한 학교는 우리 단체에서 추천한 자를 인턴교사, 기간제교사로 우선적으로 선발하겠다는 내용의 새로운 협약도 맺었다. (보수적인 한국 학교에서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학교에서는 또한 다니엘반 바로 아래반인 여호수아반을 신설하여 1, 2학년의 학생 80여명을 총괄해달라고 내게 직접 제의하였고 수업 장소도 도서관 장소를 통째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였다. 또한 한 봉사자가 자신의 담당지도 교수님께 나를 추천하여 나는 연세대학교와 인천시가 협력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한 학교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다음 학기 총 100여명(60여명의 학생과 30여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을 직접 관리하는 스쿨매니저의 역할도 감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가장 먼저, 훗날 교육 전문가가 되는데 필요한 교훈-소외계층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을 위해서는 정서적인 유대관계 정립과 학과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삶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교사의 뛰어난 지적 능력, 유창한 언어전달능력뿐만이 아니라 바로 학생에 대한 사랑과 신뢰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2011 Mumbai에서 개최된 annual conference에서Teach For America가 지난 20년간의 경험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켰던 가장 탁월한 교사는 학생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교사들이었다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For what?” 처음에 ‘1’이 아닌 ‘1/20’을 선택하였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이제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저의 작은 헌신으로 인해서 누군가의 인생이 변화되는 것은 20, 100배 이상의 결실을 맺기 때문입니다. 이것 만큼 저를 가슴뛰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학생들에게 받았던 편지 중 일부를 발췌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선생님,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야 저는 사는 것이 참 행복이자 축복임을 깨닫게 되었어요. 제가 성공해서 자서전 내면 선생님이 메인이에요. 정말 좋은 선생님이 저 같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게 너무 놀라워요. 선생님 만난 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중략) 저도 멋진 대학생이 되면 제가 이렇게 혜택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한테 베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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